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의 며느리로 들어와 회장의 자리까지 올라온 현정은 회장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현정은 회장의 어린 시절
현대가 사람이 아닌 다른 집안의 사람이 현대그룹 회장이라 현대가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으며 말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1955년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과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 사이에서 4녀 중 차녀로 태어납니다.
기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한 가정교 욱을 받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아버지 현영원은 전 신한해운 대표로 1984년 현대상선과 합병한 뒤 현대상선의 대표를 지냈던 사람이고 어머니는 전방 창업주인 김용주의 장녀이자 김무성의 첫째 누나입니다.
그러니까 현정은은 김무성의 외종질입니다.
경기 여중을 졸업하고 경기여고를 다녔는데 현정은의 말을 빌리자면 기업가 집안의 가풍 속에서 세상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시각을 조금씩 키워나가던 시기라고 이야기합니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딸만 넷인 집안인 만큼 여성의 사회화에 관심이 많아 이화여대 사회학과에 입학합니다.
사회확을 공부하며 여성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특히 여성의 사회진출과 여성개발 등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죠 이때 꿈은 사회학 교수였다고 합니다.
사실 이 꿈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는데 결혼 후에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계속 공부했으며 1977년 첫째 딸 출산 이후에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페어리 디킨스 대 대학원에서 인성개발 연구하며 교수가 되려고 합니다.
현대가 며느리
현재 현대 회장이 되어서 이때를 회상하는 말을 들어보면 이때 공부하고 체득한 것들이 지금 저에게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현대그룹 회장으로서 거대한 현대그룹 조직을 이해하고 구성원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어 공동의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당시의 공부는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진심이겠지만 뭔가 교과서에 나올법한 말이네요
현대상선의 회장이 될 만큼 아버지인 현영원은 당연히 정주영과 사적인 친분이 있었는데 정주영이 현정은을 보고 다섯째 아들인 정몽헌의 배필로 낙점해 1976년 정몽헌 회장과 결혼하면서 현대가의 며느리가 됩니다.
다른 현대가의 며느리들이 그렇듯 현정은도 현대가의 며느리로 지내면서 조용히 나서지 않고 뒷바라지를 합니다.
매일 아침 모여서 식사를 하는 현대가의 문화상 언제나 정주영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 사회학과 인성개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정주영을 상당히 존경의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지금도 정주영의 경영철학과 유지를 받들어 남북경협사업을 추진하고 자신의 슬로건도 현대그룹 재건이죠.
가정주부로 생활을 하던 현정은은 걸스카웃 연맹 중앙본부 이사나 대한적십자사 자문위원 등 사회활동에 관련된 활동에서만 모습을 보입니다.
남편 정몽헌 회장의 죽음
2003년 8월 4일 남편 정몽헌이 대북사업과 관련해 약 4억 5천만 달러 한화로 5000억 원을 북한에 송금한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사옥 12층 화장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러면서 이미 쪼개져있던 현대는 다른 아들들이 아닌 아내였던 현정은이 현대그룹 회장의 자리에 앉습니다.
험난한 회장의 길
물론 과정에서도 잡음이 있었는데 시숙의 난이라고 불리는데 정주영의 동생 정상영 KCC 회장이 정 씨의 현대그룹이 현 씨에게 넘어가게 놔둘 수 없다며 범 현대가의 결집을 호소하며 정몽준과 손잡았지만 현대가 전체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했고 지주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40% 이상 확보하며 현정은 회장의 승리로 막을 내리는 듯싶었으나 시동생 혹은 도련님의 난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또 일어납니다.
정몽준 회장이 현대그룹 인수를 시도하거든요 정몽준은 외국인이 보유한 현대상선의 주식을 26.85% 매입하는데 기존 최대 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17%를 훨씬 능가했죠 현정은에게는 위의 시숙의 난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KCC측도 간접 지원하며 다시 싸움에 나섰지만 이 또한 경영권을 가져오지 못하고 끝이 납니다. 다만 대주주로 탈바꿈한 현대중공업과 각을 세우며 아직도 경영권 분쟁의 소지가 남아있기는 합니다.
정주영이 있을 때는 정주영을 중심으로 현대가 하나처럼 운영이 되었지만 지금의 현대는 통일성이 다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승계과정에서 다 다른 기업이 되어버린 거죠 삼성을 보아도 승계과정에서 모두 다른 그룹으로 분할되었지만 현대는 좀 심각합니다.
현대건설도 현대자동차 그룹과 현대가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위에서 말했듯이 정주영의 자녀들은 현정은을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뭐 어쨌든 다른 집안사람이니까요. 현정은은 현대그룹을 물려받은 것이지 다른 계열사들은 전부 정주영의 아들들이 맡아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이름만 같은 현대이지 다른 회사입니다.
더욱이 현대의 왕자의 난 당시 정몽헌과 정몽구의 싸움에서 정주영이 정몽헌을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정몽구는 자동차 관련 계열사들을 가지고 현대그룹에서 나가버렸는데 당시에는 현대차가 이렇게 큰 기업이 아니었고 오히려 현대건설과 전자는 국내 최고의 기업들이어서 모두 정몽구에게 패배자라고 말을 했었죠.
사실 기업승계과정에서 졌기 때문에 패배한 것은 맞죠 그래서 이제는 현대그룹의 현대자동차 현대백화점이 아닌 현대자동차 그룹 현대백화점 그룹 이런 식으로 다 따로 그룹으로 불립니다.
분리되는 현대
지금은 현대차 그룹이 재계 서열 2위까지 올라가며 상황이 역전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현정은의 슬로건은 현대그룹의 재건입니다.
그리고 현대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현대건설도 현대차 그룹의 손에 들어가 버렸죠 정몽구 회장이 현대건설을 손에 넣고 기자들에게 한 말은 감개무량하다입니다
지금 현대그룹에 남은 기업들은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 무 벡스 그리고 현대아산 정도가 있습니다.
삼성과 투탑으로 반도체 경쟁을 하던 현대전자는 SK그룹에 인수되어 SK하이닉스로 가버렸고 현대건설도 현대자동차 그룹에 먹혀 현대그룹의 파워는 재계 서열 60위안에도 들지 못합니다.
참고로 현대자동차는 2위 정몽준의 현대중공업은 9위 정지선의 현대백화점은 22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현정은이 엄청 무능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건 또 아닙니다.
현대 그룹의 현재
2003년부터 10년간 매출도 2배 이상 증가시키고 그룹 자산도 3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다만 지금은 현대상선 매각과 증권 매각으로 2조 7천억 규모로 다시 줄어들기는 했습니다.
2009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에 79위로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오르기도 했고
2011년에도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50대 기업인에 48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죠 이 당시는 격변의 시기였기 때문에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으로 해외에서도 주목했습니다.
현정은의 현대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엘리베이터 부분에서 1등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여성 CEO 중에서도 특히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7전 8기의 리더십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아들을 현대그룹의 현대투자 파트너스로 보내며 금융업 확장에 힘쓰기도 하며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습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같은 여성 기업인 이부진 인생 이야기도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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